조선시대 선비들이 사랑했던 식물, 파초(芭蕉)
남방의 정취를 상징하는 이국적인 식물인 파초를 조선시대 선비들은 무척 사랑했었다.
파초를 마당에 심어놓고
파초의 넓고 시원스레 생긴 잎을 감상하거나, 파초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감상하는 걸 즐겼다.
파초잎에 떨어지는 비의 soundscape라...
무척 낭만적이다.
때로는 파초의 넓은 잎을 종이삼아 그 위에 시를 써서 즐기기도 하였다.
당시 파초는 남방의 귀한 식물이라서 종근 가격도 매우 비쌌다.
조선 중기의 선비 임억령(任億齡, 1496-1568)은 좁쌀 1말을 주고 파초 종근을 구해와 심고 있다.
파초를 심다(種芭蕉)
한말의 좁쌀로 이웃에서 바꿔와(斗粟買諸隣)
아이를 시켜 창밖에 심게 하였다(敎兒窓外種)
외려 수심 겹구나, 밤비 소리(還愁夜雨聲)
고향에 돌아가는 내 꿈 깨울까(驚我歸田夢)
[石川詩集 卷4, 種芭蕉]
파초를 월동시키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왜 그리 파초 심기에 열광을 했을까?
서거정(1420~1488)의 시
즉사(卽事)
동이만한 작은 못에 물은 맑고 얕은데(小沼如盆水淺淸)
줄과 부들 새로 자라고 갈대 싹도 나오네(菰蒲新長荻芽生)
아이 불러 대통 이어 물 끌어가게 하노니 (呼兒爲引連筒去)
파초 길러서 빗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네 (養得芭蕉聽雨聲)
[徐居正, 四佳詩集 卷10, 卽事二首]
파초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즐기기 위해 심는다고?
조선시대 파초 그림들
겸재 정선-척재제시, 조선후기 김홍도-월하취생, 조선후기 심사정-파초와 잠자리, 조선후기
파초의 열매는 노란색으로 초황(蕉黃)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초황은 뭘까?
동남아시아의 파초 바나나 (사진: 구글 이미지 검색)
사진에 보이는 것 처럼 우리가 보통 몽키바나나라고 부르는 좀 작은 크기의 바나나이다.
그럼 조선시대 파초나무에서 파초바나나가 열렸을까?
남귤북지(南橘北枳-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 라고...
월동을 잘 시켜서 다음해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렸다해도 열매는 무척 볼품없었을 것이다.
파초바나나는 그냥 먹으면 맛이 없어 동남아시아에서는 주로 요리를 해 먹는다.
구워 먹거나 튀겨 먹거나 삶아 먹거나...
기후나 환경이 적합치 않은 조선에서 초황(바나나)의 결실을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절에 많이 심는 파초 (사진: 구글 이미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