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없는 시절, 조선시대의 왕들은 어떻게 무더위를 견디며 여름을 보냈을까요?
조선시대 국왕들의 피서법과 유교적 절제 정신에 대해 함께 살펴볼까요?
♠ 조선시대에 피서를 즐기기 어려웠던 이유
조선은 유교적 가치관을 국시로 삼은 나라였습니다.
국왕부터 선비에 이르기까지 “놀고 즐기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여름철에 피서를 떠난다는 건 호사이자 사치로 여겨졌습니다.
그렇다고 폭염에 정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조선의 국왕들은 궁궐 안에서 소박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더위를 이겨냈습니다.
♠ 경회루와 창덕궁 후원 – 왕실의 피서 명소
조선시대 왕들은 궁궐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경복궁의 경회루와 창덕궁 후원이 피서처가 되었습니다.
연못이 있는 경복궁 경회루,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창덕궁 후원은 피서에 좋은 장소였습니다.


태종 시절인 1412년에도 “임금이 대비를 문병하고 나서 경회루에 가서 더위를 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얼음물에 담근 수박과 참외를 먹으며 부채를 부치고, 여름날의 고단함을 달랬습니다.


♠ 성종의 수반(水飯) – 찬물에 밥을 말아 먹다
9대 임금 성종은 더위를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어렸을 때 더위를 먹고 기절할 정도로 서증(暑症)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매년 여름철이면 경연과 정사를 중지할 만큼 고생이 심했는데, 성종 임금이 애용한 여름 음식은 다름 아닌 수반(水飯)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진귀한 궁중 음식 같지만, 사실은 그냥 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었습니다.

♠ 영조의 미숫가루 – 곡물로 여름을 달래다
21대 임금 영조는 신하들의 권유로 여름에 특별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보리로 만든 고소한 미숫가루에 복분자와 오디를 더해서 건강을 챙겼습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영조는 여름이면 미숫가루를 즐겨 마시며 기력을 회복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정조의 철학 –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며 그냥 참는다
22대 임금 정조의 피서법은 더욱 단순했습니다.
정조 임금은, “더위를 피해 자꾸 서늘한 곳만 찾아다니면, 만족할 때가 없을 것이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만족하고 참고 견디면, 이곳이 곧 서늘한 곳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즉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며 그냥 참는다는 것이지요.
정조는 지족(知足= 安分知足)의 자세를 강조하며, 절제된 삶을 살았습니다.
《정조실록》에도 “올 여름에는 삼복 더위가 혹심하지만, 나는 정사를 보는 여가에 책을 보는 공부를 한 번도 그만둔 적이 없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정조실록, 정조 23년(1799년) 6월 25일(임자)]
정조는 신하들에게, "여가에 강독을 하거나 작문을 하거나 해야 한다.” 고 당부하였습니다.
정조에게 최고의 피서법은 마음가짐이었습니다.
♠ 연산군의 사치 – 대형 얼음 쟁반
조선의 왕들이 대체로 검소했다고는 하지만, 예외도 있었습니다.
사치와 폭정으로 유명한 연산군입니다.
연산군은 후원(後苑)에 거대한 대(臺)를 쌓아 피서용 건물을 지었으며, 여름철 잔치에는 무려 1000근 무게의 대형 놋쇠 쟁반 4개에 얼음을 가득 쌓았습니다. 일종의 조선판 에어컨이었던 셈입니다.
궁궐 안에서 이런 호사스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 조선 왕들의 여름나기에서 배우는 것
조선의 왕들은 화려한 별장을 짓는 대신, 궁궐 안 연못가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찬 음식을 먹으며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내하는 마음으로 더위를 견뎠습니다.
우리가 애용하는 냉방 기기와 비교하면 매우 단출했지만, 그 안에는 자연에 순응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담겨 있습니다.
잠시 에어컨을 끄고 부채를 부치면서, 옛사람들처럼 더위를 이겨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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