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울금을 무척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당에 울금을 심어놓고 이를 소재로 시를 여러 개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울금은 주로 약재, 염료(황색), 그리고 술(울창주)을 담그는데 이용되었다.
키가 크게 자라는 울금(사진 : 구글 이미지 검색)
울금을 읊다
늦은 봄 황폐한 정원에 울금을 심었으니(春晩荒園種鬱金)
죽죽 자란 오월엔 산발처럼 더부룩해지고(森森五月欲抽簪)
가을이 오면 장차 천 길이나 높이 자라서 (秋來擬見高千丈)
비바람 몰아칠 때 봉음(아름다운 소리)이 나는 걸 보겠지(風雨聲中作鳳吟)
[四佳詩集, 권28]
천 길이나 높이 자란다고 표현한 걸 보니 조선시대 울금도 키가 무척 크게 자란 것 같다.
서거정은 울금을 심어놓고 싹이 트길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자,
땅을 파서 울금이 썩은 걸 보고 속상하여 또 시를 남기고 있다.
3월에 울금(鬱金)을 심었는데 5월이 되도록 싹이 트지 않아서 파 보니,
씨가 이미 썩어 문드러져서 생기가 없으므로 매우 한스러워 짓다.
가을에 봉미 같은 잎 번득이는 걸 보렸더니(擬見秋來翻鳳尾)
지금 고기 창자처럼 썩을 걸 어찌 알았으랴 (何知今日腐魚腸)
앞으로는 신의 귀밑털이 더 희어질 뿐이니 (從此已添臣鬢白)
노란 어포(제왕의 도포-울금초의 황색으로 염색)를 끝내 바칠 길이 없게 되었구나(無由得獻御袍黃)
[四佳詩集, 권31]
고기 창자처럼 썩었다고? 표현이 참 독특하다.
서거정은 울금이 썩어버려 임금께 올릴 어포를 염색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서거정은 매해 울금을 심어두고 감상했던 듯 하다.
어느해 인가 한여름에 크게 자란 울금을 보고는 기쁜 마음에 또 시를 남기고 있다.
뒤 뜰에 일찍이 울금향초를 심었더니(後庭曾種鬱金香)
잎 크기는 파초만 하고 열매는 생강만 하네(葉大芭蕉子大薑)
가을에 이르자 더욱더 사랑스러워라(到得秋來尤可愛)
무성한 푸른 그늘이 처마가 닿게 자랐구려(沈沈翠影拂簷長)
[四佳詩集, 권21]
울금(鬱金)
작은 정원에 울금황을 많이 심어 놓았으니(小園多種鬱金黃)
가을이 되면 백 척 이상 자랄 수도 있으리(秋後能高百尺强)
온종일 산들바람은 끊임없이 불어와서(盡日小風吹不斷)
때로 봉미를 흔들어 맑은 향기 보내오네(時搖鳳尾送淸香)
[四佳詩集, 권52]
바람에 실려오는 울금꽃 향기는 어떤 것일까?
조선시대 선비들의 시를 통해 파초나 울금같이 잎이 넓고 큰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식물들도
매우 사랑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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